오늘은 상강(霜降)입니다. 서리가 내리면 나무는 말없이 잎을 내려놓습니다. 한때는 햇살을 향해 온몸을 펼치고 푸르름을 노래하던 잎들입니다. 그러나 계절이 깊어지면 나무는 더 이상 붙잡지 않습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잎을 하나씩 떠나보내며, 빈 가지를 겨울 하늘에 내어줍니다. 나무는 알고 있는 것일까요. 떠나보내는 것이 반드시 잃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상강(霜降), 물러남이 아름다운 이유
이슬이 서리가 되는 자리
상강(霜降)은 이십사절기의 열여덟 번째 절기입니다. 한로(寒露)에 맺힌 차가운 이슬이 마침내 얼어 서리가 되는 때이며, 옛사람들은 이 보름을 세 후(候)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초후에는 승냥이가 잡은 짐승을 늘어놓아 마치 제사를 올리는 듯하고(豺乃祭獸), 차후에는 초목이 누렇게 시들어 떨어지며(草木黃落), 말후에는 겨울잠 자는 벌레들이 땅속으로 몸을 숨깁니다(蟄蟲咸俯). 바깥의 위엄에서 안의 갈무리로, 생명이 가장 깊은 곳으로 물러나는 짧은 서사가 이 보름 안에 펼쳐집니다.
술월(戌月)에 온 상강(霜降)
사주명리에서 상강은 술월(戌月)의 중기(中氣)입니다. 술토(戌土)는 가을의 금(金)을 거두어 다가오는 겨울의 수(水)에게 길을 터 주는 환절의 흙이며, 그 속에는 신금(辛金)·정화(丁火)·무토(戊土)가 겹겹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서늘한 금의 여운, 꺼진 듯한 불의 잔온, 그리고 모든 것을 받아 안는 묵직한 흙입니다.
특히 술은 화(火)의 고(庫)입니다. 인오술(寅午戌)에서 타오르던 불이 술에 이르러 곳간에 들어가는 것을 흔히 입묘(入墓)라 하지만, 고(庫)의 본뜻은 소멸이 아니라 저장입니다. 불은 꺼지는 것이 아니라 흙 속에서 다음을 기다립니다.
잎은 모두 떨어졌어도 가지 끝에 붉은 감이 남아 있는 것은, 한 해 동안 달아오른 불의 기운이 열매로 갈무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잎은 놓되 열매는 품는 것, 그것이 술토가 하는 일입니다.
귀근(歸根), 돌아간다는 것
노자는 만물이 저마다 뿌리로 돌아가며, 뿌리로 돌아감을 고요함이라 했습니다. 귀근(歸根)은 뒤로 물러서는 일이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일입니다. 나무는 잎을 잃었으나 뿌리를 잃지 않았습니다. 음양으로 보아도 양(陽)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땅속으로 들어가 동지의 일양시생(一陽始生)을 준비합니다. 드러난 것이 줄어드는 만큼 감추어진 것은 깊어집니다. 물러남은 간직함의 다른 이름입니다.
삶의 상강
사주명리의 바탕은 결국 때를 읽는 일입니다. 같은 갑목(甲木)도 봄과 가을에 전혀 다른 삶을 삽니다. 그러므로 꽃이 피었다고 언제나 봄일 수는 없고, 잎이 진다고 생명이 끝난 것도 아닙니다.
올해 병오(丙午)년의 상강은 무술(戊戌)월에 놓여 있습니다. 한 해를 달구던 병오의 불이 술토의 고요한 곳간 앞에 이르렀으니, 무엇을 거두고 무엇을 곳간에 남길 것인지 묻게 되는 가을입니다.
젊은 날에는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모든 인연이 끝까지 함께할 수 없고, 모든 꿈이 이루어져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많이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알아 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미워했던 사람을 놓아주고, 이루지 못한 꿈을 조용히 보내며, 대신 따뜻했던 말 한마디와 묵묵히 지켜 온 진심을 오래도록 품는 것. 그것이 나이 듦이 가르쳐 주는 지혜일 것입니다.
잎은 놓되 열매를 품은 감나무처럼
사주는 풍경입니다. 상강의 풍경은 가만히 일러줍니다. 꽃피는 날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잎을 떨구는 날에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에도 끝내 간직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고.
물러나는 것을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떠나보낼 것을 보내고 지킬 것을 품으며 자신의 자리에 고요히 머무는 일, 그것이 자연의 이치와 자신의 때를 함께 이해하는 삶입니다.
지나온 계절에는 감사하고, 다가올 계절에는 마음을 열어 둔 채, 그렇게 자신만의 계절을 살아가야 합니다.
[고전용어]
📜 고전 《일주서(逸周書)》 〈시훈해(時訓解)〉의 상강(霜降) 기록
霜降之日,豺乃祭獸;又五日,草木黃落;又五日,蟄蟲咸俯。
상강지일, 승내제수; 우오일, 초목황락; 우오일, 칩충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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